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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방지리 63-1유적(淸道 芳旨里 63-1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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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청도 방지리 일원 신화랑 풍류체험밸트 조성사업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14-0509 호
유적위치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방지리63-1번지 일원 발굴유형정밀발굴
조사기간2014.05.28. ~ 2014.07.02.
조사면적1,979㎡
유적종류생활, 생산, 분묘 유    형조선시대 건물지, 주거지,축대와 배수로, 수혈, 노지, 구, 샘(천), 주혈군, 삼가마, 밭, (추정)석곽묘
시    대조선시대
내    용

유적은 조선시대 동창천 주변의 완만한 구릉사면부와 충적지를 생계를 꾸려가던 서민들의 작은 마을로 추정된다. 이곳은 동창천을 따라 경주로 이어지는 주교통로 상에 위치하는데, 이 교통로 주변으로는 조선시대 이전에 형성된 크고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유적은 동창천 건너편에 위치한 큰마을인 상방지, 중리, 하방지 마을과 하류의 임당리 마을, 상류의 순지리, 대천리 마을과 교류하며 살아갔을 것으로 보인다.


확인된 유구는 성격별로 보면 건물기단지, 주거지, 수혈, 구, 노지, 샘, 주혈군 등의 생활유구, 삼가마, 밭등 생산유구, 추정석곽묘 등 분묘유구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건물기단지는 인근의 큰마을에서 따로 떨어져 위치한 기와집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아마 문중재실이나 사당 또는 당집과 같은 의례 건물로 판단된다. 주거지의 경우에는 2동이 따로 떨어져 조성되어 있는데, 작은 마을을 이루던 일반 서민들의 초옥으로 판단된다. 그 외 (추정)석곽묘의 경우에는 분묘로 판단되며, 샘(泉)의 경우에는 주변의 높은 산지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이용하는 작은 바가지샘으로 주변 가옥에서 식수로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 샘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최근까지도 농사용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삼가마(麻蒸窯)의 경우에도 규모가 적고 단순한 구조로 다량 생산하여 주변으로 판매하는 용도라기보다는 자급자족하는 정도의 직물생산을 위해 이용한 시설로 판단된다.


대체로 유적에서 가장 늦게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건물기단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시기에 존재했던 유구들로 판단된다. 중심시기는 출토되는 귀얄문 위주 분청자와 내저원각이 있는 백자의 특징으로 미루어 15세기 후반~16세기 중반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