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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두산동 고분군(大邱 斗山洞 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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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대구 두산동 625번지 제2종 근생시설부지 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14-0186호
유적위치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625 발굴유형정밀발굴
조사기간2014.03.11. ~ 2014.04.02.
조사면적537㎡
유적종류분묘 유    형옹관묘, 석곽묘, 석실묘
시    대원삼국, 삼국
내    용

유적은 삼국시대의 두산동고분군이 조성된 능선의 남편 말단부에 위치하며, 조사대상지(면적 537㎡) 내에서는 원삼국시대 고묘(옹관묘) 2기와 삼국시대 고분(석곽묘/석실묘) 9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여기에서는 유개고배, 대부장경호, 단경호, 병, 병형토기, 연질옹, 도자, 과대금구, 이식 등 82건 10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번에 조사된 두산동고분군은 조사된 범위가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던 두산동고분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원삼국시대 옹관묘가 확인된 점이다. 비록 유구와 유물의 잔존상태는 양호하지는 않지만,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원삼국시대 유구로서 의의가 크다. 유적이 위치한 인근의 중동과 상동에는 대구의 청동기시대 유적을 대표하는 지석묘와 주거지 등이 유존하고 있으며, 고분군의 북동편에는 동검·동경 등이 출토된 초기철기시대의 두산동 청동기유적이 위치한다. 따라서 금번의 조사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 유구는 이 지역의 시대적 공백을 메워줌으로써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인간활동이 있었던 곳임을 보여주게 되었다.

둘째는 고분의 편년을 통해 두산동고분군의 조성시기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범위는 모두 고분군의 가장자리에 해당하지만,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후반의 묘제와 유물상이 확인되었고, 또한 목곽묘 및 그 단계의 유물이 수습되어 늦어도 4세기부터는 고분의 조영이 시작되어 6세기 후반까지 지속적인 조영이 이루어졌음을 밝힐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한시적으로 조영되는 고분군과는 달리 두산동고분군을 조성한 집단이 지역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생활을 영위해 왔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석곽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구 복현동고분군의 유물상과 유사하여 양자간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끝으로 두산동고분군에서 처음으로 석실묘가 확인됨으로써 단위고분군 내 묘제의 변천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석실묘의 분포가 두산동고분군의 범위에 걸쳐 바깥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므로 이전에 설정된 고분군의 분포범위가 남쪽으로 확장됨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