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조사연구

보고서현황

성주 유월리 산43-5유적(星州 柳月里 山43-5遺蹟)

본문

유 적 명성주 유월리 산453-5번지 일원근린생활시설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성주 유월리 산453-5번지 일원근린생활시설부지내 유적
유적위치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 산43-5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조사기간2008.09.17. ~ 2009.09.11.
조사면적24,547㎡ (제1차:6,757㎡, 제2차:17,790㎡)
유적종류생활, 생산, 분묘 유    형목곽묘, 토기요, 폐기장, 수혈, 구, 주혈, 토광묘
시    대삼국, 조선
내    용

  본 유적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토기가마와 관련 폐기장이 확인되었고 이 밖에 삼국시대 수혈, 구, 주혈, 고려~조선시대 봉분, 토광묘 등 모두 48기의 유구와 79점의 관련유물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토기가마는 구릉 정상부를 기준으로 북동-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려오는 가지능선 사이의 곡간에 접한 사면 일대에서 6기와 관련 폐기장이 확인되었다. 가마들은 최근까지 이루어진 경작과 임도에 의해 절토되어 절개지의 단면상에서 그 존재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노출된 절개지의 단면을 정리하면서 토기가마의 원상과 대체적인 범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다만 노출된 면을 통해 볼때 가마는 대체로 반지하식의 구조로 판단된다. 그리고 토기가마 주변에서 확인된 수혈과 구, 주혈 등은 가마와 관련된 공방지이거나 이와 관련된 부속시설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토기가마 및 폐기장의 윤곽을 확인하고 단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량소성되어 폐기된 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대체로 무문 또는 평행타날된 호편과 용도불명의 토제품, 기왕에 조사된 유월리유적(Ⅰ지구)의 내용을 고려하면 대체로 중심시기는 6세기대로 판단된다. 특히 두께가 기와처럼 두꺼운 용도불명의 토제품은 창녕 계성 A지구 1호분 출토품과 그 양상이 비슷해 주목되며, 유월리 토기가마터에서 이러한 토제품을 소성하였다는 것을 이번조사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한편 삼국시대 목곽묘도 1기 확인되었는데, 시굴조사의 한계로 인해 자세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

이와 함께 조사대상지에는 전반적으로 고려~조선시대 분묘가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일부 성격과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내부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목관을 사용한 것도 있고 직장한 것도 있었다. 내부에서 귀얄문 분청자발·접시 등 분청자류와 내저면과 굽에 모래비짐을 원형상으로 배치한 백자발 등을 고려하면 그 시기는 대체로 16~17세기로 판단된다. 그러나 동일 구릉상에 위치한 성주 유월리유적(Ⅰ지구)에서 고려시대 분묘가 조사된 점을 고려하면 토광묘는 고려시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능선 일대에서 확인된 소형의 봉분 6기도 고려~조선시대에 조성된 분묘로 추정된다.

 

*토기가마와 공방지가 포함되는 부분(3,274㎡)에 대해서는 사업시행자가 원형보존을 희망하여 정밀발굴범위에서 제외하고, 그 외 고려~조선시대 토광묘가 확인된 범위(8,662㎡)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는 사업시행자의 사정으로 진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