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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신평리 산105유적(義城 신평리 山105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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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의성바이오컨트리클럽 조성부지 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8-366호
유적위치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신평리 산105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조사기간2009.05.06. ~ 2009.08.19.
조사면적112,931㎡
유적종류분묘, 생산, 건물 유    형석실묘, 토기요,폐기장, 자연구, 수혈, 노지,토광묘, 건물지(추정사지)
시    대삼국, 조선
내    용

의성 신평리 산105유적이 위치한 봉양면 일대는 선사시대 이래로 군위군-의성읍-금성면-비안면을 방사상으로 연결하는 교통로의 결절지이다.

모두 6개 구역에 대해 진행된 시굴조사에서는 2개 구역에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유구들이 각각 확인되었다.

그러나 확인된 유구들은 시굴단계에서 모두 원형보존하였음으로 개별유구의 분명한 성격을 밝히기는 어려웠고, 세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구의 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도면이나 사진,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출토유물도 많이 확보하지는 못했다.

제1구역에서는 삼국시대의 석실묘, 토기가마와 폐기장, 자연구, 수혈, 노지가 각각 1기씩, 그리고 조선시대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다.

석실묘는 능선 사면의 중턱에 위치하는데, 동벽은 유실되었으며, 벽석은 2단 정도가 남아 있었다. 구조는 횡구식이나 횡혈식으로 보이는데, 경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는 유실된 동벽부로 입구부가 나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규모는 現장축 2.5m, 단축 3m 정도로 평면 정방형의 석실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남동쪽 가장자리와 동편 경사진 면에서 각각 단경호 1점씩 수습되었다. 석실의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6세기 중엽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석실묘는 제5구역과 인접한 신평리 오루골고분군 내에서 확인되는 석실묘들과 동일한 구조로 보이며, 봉양면 일대에 산재하는 소규모 고분군 중 하나로 파악된다.

삼국시대의 토기가마와 폐기장, 수혈, 노지는 모두 토기생산과 관련된 시설들로 판단된다. 토기가마는 굴뚝부분이 확인되지 않고 소결된 벽체이 무너져 내린 상태와 경사면을 따라 길쭉하게 피열흔과 벽체가 일정한 폭으로 확인되는 상태로 보아 반지하식 토기가마일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 규모는 길이 6m 내외, 너비 1.8m 정도로 하단부에 형성된 폐기장 아래에 연도부가 잔존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변의 수혈과 노지 역시 토기생산과 관련된 시설로 파악되지만 분명한 성격은 알기 어려우며, 능선의 직교방향으로 진행되는 자연구는 토기가마의 조업이 중단된 후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폐기장의 일부를 자르고 지나가고 있다.

제6구역에서는 조선시대 건물지와 관련된 석축기단 및 배수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삼국시대의 토기편과 조선시대의 와편, 백자편, 분청자편, 옹기편, 청동시, 관정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건물지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트렌치 상에서 파악된 구조물과 출토유물들의 존재로서 성격과 규모 및 사용시기를 단편적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시굴조사 결과를 통해 이곳에 대한 형질변경이 거의 없었음이 확인되어 계단식으로 조성된 대지에 동향의 건물이 2~3동 정도가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건물지 중앙의 상단부분에는 오목하게 지형이 정지되었고 일련의 적심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산신각과 같은 신당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부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며 일련의 배수로로 추정되는 석렬이 확인되었다.

이와 더불어 최근까지 이곳의 지명이‘절골’로 불리고 있고, 수백 년 전 이 절골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하는 마을 주민들의 전언, 그리고 기와를 얹은 비교적 격이 있는 건물이라는 점들을 종합한다면, 이 건물지는 작은 암자와 같은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용시기는 퇴화된 인화분청자와 백자굽 등을 통해보면 16세기가 중심시기이며, 17세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