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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산리 245-1유적(高靈 池山里 245-1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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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고령 도시계획도로(소2-32, 2-34호) 개설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8-384호
유적위치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 245-1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08.07.30. ~ 2009.04.06.
조사면적시굴)1,937㎡, 정밀발굴) 1,304㎡
유적종류생활, 건물 유    형유물포함층, 구, 건물지, 수혈
시    대삼국~조선, 시대미상
내    용

  발굴조사 결과 12세기 경에 축조된 고려시대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구, 수혈, 주혈 등의 유구와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조사대상지의 지형이 경사면을 이루고 매우 좁고 긴도로 부지에 해당하여 부분적으로 확인된 유구와 유물로서 전체유적의 모습을 복원하거나 성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기 조사된 여러 유적을 통하여 고령읍(현, 대가야읍) 일대 취락의 분포정형을 살펴보면 대가야시대 이후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치지는 傳대가야궁성지가 위치한 일대로 공해건물과 사찰 등 주요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읍치와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가진 주변취락들은 인접한 주변 구릉들의 완만한 사면부와 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분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 유적은 읍치지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남산 북사면의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하는데 고려시대 건물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조성시기는 건물지 내부에서 출토된 해무리굽청자와 청자화형접시의 특징을 통해 볼 때 12세기 경으로 보인다. 이 건물지들은 일부분이 조사되었으나 제법 큰 규모의 기와집과 특수한 용도의 팔각건물이 상호연관성을 가지며 동시기에 유존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건물이 경사면에 들어서 있고 부지가 협소하며 건물 방향도 북향인점 등, 입지조건이 좋지 못해 뚜렷한 목적을 갖고 조성된 건물로 보았다. 우선 읍치지에 인접해 있고 대가야시대 이후 고령에서 합천으로 향하는 주교통로에 접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높은 관리나 지방유력가의 가옥 또는 역원이나 창고 등의 공해건물이거나 부유한 상인의 건물일 가능성을 제시해 보았다. 이는 불리한 입지조건 이지만 주교통로에 인접하고 있어 육로수송을 통한 주변지역과의 교역에 있어서는 매우 실용적인 입지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대형 기와집(제1호 건물지)에서 ‘大加’銘의 기와가 출토되었고, 서북편으로 800m 정도 떨어진 지산동 44-1번지 생활유적 내 Ⅱ-2구역에서 채집된 ‘勿山寺’銘의 기와가 동시기로 판단되었고 이러한 명문기와들이 주로 사찰, 공해건물 등에 많이 출토된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또한 팔각건물(제2호 건물지)의 형태는 고대사회이래로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던 祠堂, 사찰의 전각에 주로 보이며 그 외 목탑, 석탑, 석등, 부 도 등 불교와 관련된 유물에 많이반영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팔각형태는 불교의 팔정도, 팔상도 등에 반영된 의미와 도교의 팔괘사상이 결부되어 나타난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제1호 건물지에서 ‘大加’銘의 기와가 출토되었고, 팔각건물로 복원되는 제2호 건물지가 매우 정형화된 형태로서 주초석을 사용한 기와집이며 동일한 팔각형태의 특징이 주로 동시기 사찰유물에 많이 반영되었음을 통해 건물들의 성격이 사찰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또한 유적은 고령읍(현 대가야읍) 내에 위치한 지산동당간지주와 물산사와도 일정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금번에 조사된 건물지들이 고려시대 읍치지에 위치한 勿山寺에 딸린 大加寺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상상도 해본다.

지금까지 고령읍일대에서 이루어진 조사와 연구의 대부분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관련된 것으로 死者를 통해 본 대가야 문화복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대가야시대 이후 고령지역에서 살던 주민들의 삶과 관련된 생활유적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다행히 최근에 들어와서는 단편적이나마 여러 곳에서 다양한 시기의 유적이 조사됨으로 인해 그 베일을 조금씩 벗기고 있으며 이제는 이러한 작은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역사퍼즐을 완성해 나갈 때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금번에 조사된 고령 지산리245-1유적은 비록 부분적인 자료이지만 고려시대 읍치지 주변에 조성된 취락의 한 부분임을 보여주고 있어 향후 고령지역 주민들의 삶을 통한 역사와 문화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