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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상줄동 산3-6유적(榮州 上茁洞 山3-6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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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영주 상줄동 산3-6번지 일원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8-613호
유적위치경상북도 영주시 상줄동 산3-6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08.09.10. ~ 2008.10.23.
조사면적1,957㎡
유적종류工人村(토기·옹기생산시설) 유    형옹기요지, 토기요지, 공방지, 배수로, 제단, 유약시유혈, 유약저장혈, 노지, 수혈, 추정점토채취장
시    대조선
내    용

 조선시대 후기의 옹기요지, 토기요지, 공방지, 제단, 유약시유혈, 유약저장혈, 노지, 수혈, 점토채취장 등 27기의 유구와 관련유물 다수가 출토되었다. 특히 기물을 제작하던 공방지와 유약관련시설, 소성시설인 요지, 의례를 진행하던 제단지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구분 배치되어 공간을 이루고 있음으로써 영주지역 작은 공인마을의 전체모습을 복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본 유적과 비슷한 시기로, 옹기의 생산과 제작시설이 확인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울산 덕현리유적Ⅱ(울산문화재연구원 2007)와 제천 동막골 유적(중원문화재연구원 2008) 등이있는데 이 유적에서는 생산시설인 요와 제작시설인 공방지 및 녹로혈 등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나머지 발굴조사된 대부분의 유적들에서는 요지만 확인되거나 공방관련시설의 일부가 추가적으로 확인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전체유적 중 부분발굴에 그치거 나 비교적 형체를 잘 보존하고 있는 요지에 비해 공방지의 경우에는 간이시설로 만들어져 후대에 훼손된 사례가 많은 결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본 유적은 생산시설인 요지, 기물을 제작하던 공방지와 유약관련시설, 의례를 진행하던 제단지 등이 유기적으로 배치된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어 조선후기 공인촌의 전체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양호한 사례로서 이후 동일한 유적의 조사시에 많은 참고가 될 것 으로 기대된다. 그 외에도 유적내에서는 사전기획되어 조성된 생산·제작시설과 연결된 지점에서 기물의 원료인 점토채취장이 확인되고, 주변으로 풍부한 산림자원이 있는 입지를 하고 있으며, 특히 영주-풍기-순흥을 잇는 주요교통로의 주변에 위치하여 상품의 유통에도

매우 유리한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어 향후 조선시대 영주지역의 토기·옹기생산체계와 유통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양호한 실물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줄동 산3-6번지 일대에 공인촌이 조성된 시기는 출토유물의 특징을 통한 편년을 우선으로 하고 방사성탄소연대와 고고지자기측정치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중복관계를 보여주는 요지들을 통해보면 제1·3호토기요지→ 제2호토기요지→ 옹기요지의 순으로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어 적어도 3단계 이상의 생산시설의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 공방촌에서는 단계별 생산시설의 변화도 있었지만 어느 시점을 기준해서는 토기에서 옹기로 생산체계까지 완

전히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 공방지와 유약관련시설 등은 모두 최후에 조업이 이루어지던 옹기요와 관련된 시설로 파악되었다.

 

<<특기사항>>

유적은 조선후기 토기와 옹기를 생산하던 공인촌으로 인접지역인 영주, 순흥, 풍기등지에 해당기물을 공급했던 것으로 판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