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조사연구

보고서현황

대구 비산동 405-1유적(大邱 飛山洞 405-1遺蹟)

본문

유 적 명대구 서부초등학교 개축공사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8-450호
유적위치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405-1번지 발굴유형 제2008-450호
조사기간2008.07.07. ~ 2008.09.12.
조사면적1,460㎡
유적종류생활, 분묘, 건물 유    형석곽묘, 수혈, 고상식건물지,우물, 구, 집석유구, 목관묘, 토광묘, 주혈
시    대삼국~조선, 근래
내    용

   대구 비산동 405-1번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석곽묘 12기, 수혈 4기, 구 1기, 고려~조선시대 수혈 16기, 고상식건물지 1동, 구 5기, 토광묘 2기, 조선시대 추정의 토광묘 3기, 목관묘 1기, 집석유구 1기, 우물 1기, 주혈 8공 등 5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의 의의는 무엇보다 대구의 핵심 고분군인 달서고분군의 석곽묘 12기가 조사되었다는 점이다.

  비산동과 내당동에 걸쳐 광범위한 달서고분군은 달성과 함께 고대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보고였다. 그러나 해방후로 대도시의 시가지팽창이 거듭되어 지금은 달성만 남아있을 뿐 고분군은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 되고 말았다. 1980년 이전에는 판자집 등 지형의 형상변경이 적었던 건물이나 도로가 많았으나 그 뒤로는 생활여건의 향상으로 양옥집, 특히 최근 원룸식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면서 지표의 굴착이 수반되어 그나마 지표아래 남아 있었던 고분들이 대량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달서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대형 봉토분만 87기가 확인되었다. 대형봉토분의 기수가 그렇다면 중소형 봉토분과 석곽묘군 등의 소형묘들은 당시에 수천 여 기가 조성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에 대형 봉토분 중의 7기가 조사된 이래로 최근에 와서야 비산동 200-82유적과 비산동 202-1유적 등 극히 단편적인 자료가 되는 소형고분 몇 기가 조사·보고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에 조사된 석곽묘 12기는 비록 규모가 작고 유존상태도 양호하지 못하지만 대규모였던 달서고분군 중의 5~6세기 대소규모 석곽묘군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