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조사연구

보고서현황

고령 지산리 제의유적 (高靈 池山里 祭儀遺蹟)

본문

유 적 명고령 주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22-0416호
유적위치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58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
조사기간2022.04.04. ~ 2022.12.22.
조사면적시굴 : 1차 2,000㎡, 2차 7,758㎡ 정밀 : 1,000㎡
유적종류제의유적 유    형대가야 추정 제단지, 평탄대지(평탄부, 사면성토부), 수혈, 시대미상 선행수혈, 토단석축
시    대대가야, 시대미상
내    용

  고령 지산리 제의유적은 고령 주산성 사적범위 내에서 연조리 제의유적이 발굴조사(2021년) 되면서 유사한 성격의 대가야시대의 유적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고령군이 연속으로 발굴조사를 기획하고 전행한 결과 확인된 유적이다. 입지상 연조리 제의유적과 대칭된 지점에 위치하며 유사한 성격의 제의시설로 파악되었지만, 외형은 백제지역의 서천 봉선리 유적의 제단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번 유적의 성격을 파악하면서 평탄대지 구축 양상이 성곽으로 볼 여지도 있어 이에 대한 검토도 있었다. 그러나 입지적인 면과 구조적인 측면에서 인접한 주산성과는 차이점이 있었다. 평탄대지 조성을 위한 사면 성토방법에서 기초부 조성방법은 주산성과 비슷한 점이 있었으나, 하단 석축의 높이가 낮은 점, 할석과 점토를 성토하면서 뒤채움 성토재가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석축(렬)이 여러 단으로 경사면을 따라 구축된 점, 동쪽 골짜기 상․하위에서 내부 평탄대지로 자연스럽게 진입합 수 있도록 골짜기를 메워 대지를 조성한 점, 동쪽에 더 높은 주산이 있어 동쪽은 경계를 위한 조망이 제한된 점 등 성곽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반면, 조사범위 일대가 고분군 분포범위와 이격되어 보다 높은 지점에 위치한 점, 독립된 구릉의 정상부와 그 사면을 성토하여 평탄한 대지를 조성한 점 등은 대가야 당시 이곳이 사후(死後) 공간과는 분리된 별도의 통치(統治)와 관련된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백제 웅진․사비시기 제의유적으로 알려진 서천 봉선리 유적과 외형 및 입지가 비슷한 점 등에서 주산성을 중심으로 대칭되는 곳에 위치한 연조리 제의유적과 비슷한 시기에 운용된 제의유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소규모 단위의 동제에서도 그 터와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대규모로 조성된 이 장소는 중요한 국가 제의시설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인접한 연조리 제의시설은 선축된 제1차 제의시설(수혈)에서 가야연맹의 토속적 천신계가 행해진 곳이었다가, 국가적 면모를 갖출 무렵 중국의 영향을 받아 재정비한 계2차 제의시설(토석단)에서는 대가야 고유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천지제가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대가야가 고대국가 단계로 발전하면서 건국신화 또한 ‘卵生說話'에서 ‘政見母主說話'로 재편되는 등 새로운 국가체재의 정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지산리 제의유적은 대가야 왕들의 묘역인 지산동고분군의 1호분과 가야산 사이에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바, 대가야 통치자와 콴계뒤 조상신에 대한 제의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대가야왕도의 진산인 주산을 중심으로 북동주하는 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 배치된 연조리 제의유적과 남서주하는 능선의 가장 높은 독립 봉우리에 배치된 지산리 제의유적은 대가야의 5세기에서 6세기 전반 무렵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이전의 국가제의시설을 그 위상에 맞게 대규모로 재정비한 모습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