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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연조리 제의유적(高靈 延詔里 祭儀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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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고령 주산성 정비부지 내 연조리 고분군(제1·2호분)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21-0248호
유적위치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 산7-11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21.03.15. ~ 2021.12.17.
조사면적시굴) 625㎡, 정밀발굴) 625㎡, 추가시굴) 400㎡
유적종류제의, 분묘 유    형대가야 제1차 제의시설(하부수혈) 제2차 제의시설(토석단), 배례공간 추정지, 신라시대 석실묘
시    대대가야, 신라
내    용

시굴) 2021.03.15. ~ 2021.03.22. 정밀발굴) 2021.07.19. ~ 2021.12.10.    추가시굴)2021.12.14. ~ 2021.12.17.


고령 연조리 제의유적은 고령군에서 추진하는 고령 주산성 정비부지 내 연조리 고분군(제1·2호분) 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확인된 유적이다. 그 동안의 지표조사 및 연조리고분군 정밀분포조사 등을 통해 연조리고분군 내 제일 높은 곳에 별도로 위치한 고분(제1·2호분)으로 알려져 있었던 봉토분 (제1호분)이 결과적으로는 대가야시대의 제의시설이었음이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제2호분은 근 래에 조성된 임시 석조구조물로 유적 주변 주산의 비슷한 입지에서 확인되는 한국동란기 참호(塹壕)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밀발굴조사를 통해서 대가야시대 제의시설 2기(제1차 하부수혈 및 제2차 외원내방형 토석단), 배례 공간 추정지와 신라시대 석실묘 1기가 확인·조사되었고 유구 안팎에서 토도류와 금속류, 석기류 등의 관련 유물이 소량 출토되었다.

연조리 제1·2차 제의시설은 왕도 배후의 진산에 위치한다. 이곳은 정견모주 설화의 배경인 가야산과 대가야 왕도인 대가야읍내 그리고 넓게 펼쳐진 경작지 등이 모두 조망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제의시설은 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하는데, 입지적으로 보면, 연조리 고분군과의 관련성 보다 대가야와 관련된 국가적 제의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조리 제의시설의 구조로 보았을 때 선축된 제1차 제의시설(하부수혈)에서는 가야연맹의 토속적 천신제가 행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출 무렵에는 중국식 교사단의 영향을 받아 정비된 제2차 제의시설(토석단)에서는 대가야 고유의 천지제가 행해졌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는 대가야가 고대국가 단계로 발전하면서 건국신화 또한 ‘卵生說話’에서 ‘正見母主說話’로 재편되는 등의 과정에 대한 기왕의 연구와도 부합된다.

한편, 백제지역의 공주 정지산 유적과 공주 교촌리 석축단 주변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화장묘가 대단위로 축조되며 중복양상을 이루고 있다. 연조리 제의유적 역시 6세기 말경의 신라 석실묘가 제2차 제의시설(토석단)을 파괴하며 조성되어 있다. 제천과 제지를 지내는 국가적 제의시설의 폐기는 국가의 존망과 관련하여 정신세계의 말살 및 정복국가로의 편입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는 통일과정에 복속된 국가의 제의시설을 폐기하고 이곳에 의도적으로 무덤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연조리 제2차 제의 시설(토석단)의 폐기과정 역시 신라로의 복속 과정 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양상 역시 연조리 제의유적이 대가야의 국가적 제의시설이었음을 반증하는 증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연조리 제의시설은 대가야의 초기에는 수혈형태(제1차)로 사용하다가 대가야가 강성해진 6세기 전반 경에는 동일 장소에 외원내방(또는 下圓上方)형의 제단시설과 배후에 넓은 배례공간을 갖춘 대규모 국가제사지(제2차)로 재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가야 멸망 후인 6세기 말엽에는 제단시설의 가장자리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신라 석실이 들어선 양상을 보여준다. 한편, 이러 한 양상은 동시기 지산동고분군에서 나타나는 신라계 석실 또는 신라유물이 부장되는 무덤을 조성하면서 선대의 대가야 무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부장유물까지 치워버리는 행위와도 연결된다. 즉, 이러한 자료들은 신라가 대가야를 점령한 후 그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의도적인 행위들로써 당시의 시대적·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어 향후 대가야사 연구에 주요과제로 판단된다.

대가야왕도의 진산인 주산을 중심으로 북동주하는 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 배치된 연조리 제의유적은 대가야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로 대가야가 처음 국가제의시설을 설치하고, 최전 성기를 맞으며 그 위상에 맞게 이전의 국가제의시설을 대규모로 재정비한 모습, 마지막으로 멸망 후 대 가야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신라의 의도성까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