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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방천리 산43유적(大邱 坊川里 山43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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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대구 방천리 환경자원시설 조성공사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7-349호
유적위치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산43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07.06.11. ~ 2007.11.02.
조사면적362,800㎡
유적종류생활유적, 분묘유적 유    형주거지, 수혈, 구,배수암거, 석축, 주혈, 토광묘
시    대통일신라~조선시대, 근래
내    용

유적에 대한 조사는 전체조사대상지를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제1구역에서 통일신라~조선시대 주거지 2기, 수혈 9기, 구 5기, 기타 8기 등 총 24기가 조사되었고, 제구2역에서 고려시대 수혈 1기, 근래 토광묘 2기 등 총3기가 조사되다. 제3구역에는 유구·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주거지는 제1구역의 제1지점에서 1기, 제2지점에서 1기 등 총2기가 조사되었다. 3~6평 남직한 규모로, 내부구조가 단순하며 주변에는 수혈과 주혈, 생산유구(제2지점의 제2호 수혈) 등이 확인되고 건물유구(제4지점의 석축)가 혼재해 있다. 제2호 주거지의 경우 내부에 하나의 주기둥이 설치되고 주거지 외부에 서까래의 구조로 보조기둥이 설치되는 형태로 원추형의 움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입지와 규모, 내부시설의 양상을 볼때 주거지는 장기간의 주거용도로 이용되었기 보다 생산활동과 관련되는 임시 주거용도로 보여진다.

수혈은 제1구역의 제2지점에서 1기, 제2지점에서 4기, 제4지점에서 3기, 제5지점에서 1기, 제2구역 제1트렌치에서 1기 등 총10기가 조사되었다. 제1호 수혈은 거의 바닥만 남아 정확한 유구의 성격은 불명하나 추정컨대 평면형태가 부정형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보아 어깨면이 상당부분 훼손된 점, 바닥에 목탄이 일부 확인된 점, 내부주혈이 3공 있다는 점, 제1호 주거지의 동쪽능선부에 위치한 점 등으로 보아 평면원형의 움집형태의 고려시대 주거용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제2호 수혈은 내부에 불을 맞아 붉게 변색된 10~30㎝ 내외의 천·할석이 3~4단 정도 채워진 점 등으로 보아 제2호 주거지와 관련된 생산유구로 추측할 수 있다. 제·8호 수혈은 인접한 배수암거시설, 석축렬과 함께 건물지?)와 관련된 시설로 추측할 수 있다. 제10호 수혈은 내부에 대호가 확인되어 저장시설로 추측할 수 있다.

구는 제1구역의 제1지점에서 1기, 제2지점에서 1기, 제3지점에서 1기, 제4지점에서 2기 등 총5기가 조사되었다 제1·3·5호 구는 평면형태가 ‘一’자형으로 자연스러운 경사면을 보이고 있어 자연수로로 추측할 수 있다. 제2호 구는 평면형태가 ‘ㄱ’자형으로 제2호 주거지와 관련된 시설로 추측할 수 있다. 제4호 구는 ‘ㄴ’자형을 띤 부정형으로 인접한 제7·8호 수혈과 배수암거시설, 석축렬 등 건물지(?)와 관련된 시설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제3호 구에서는 단각고배, 점열문이 시문된 대부완, 파상문이 시문된 장경병 등 토기 15점과 어망추 2점이 출토되어 이 지역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간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배수암거와 석축시설은 인접한 제4호 구와 제7·8호 수혈과 함께 이곳에 조선시대 건물지(?)와 관련된 시설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