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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연화리 산104-14유적(漆谷 蓮花里 山104-14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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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일원 문화재청 허가번호2010.12.03
유적위치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08.09.16. ~ 2008.12.09.
조사면적시굴) 17,670㎡, 정밀발굴) 6,150㎡
유적종류생활, 건물, 생산, 분묘 유    형주거지, 건물지, 공방지, 수혈, 구, 주혈, 삼가마, 우물, 암거, 토광묘, 옹관묘, 회곽묘
시    대고려~조선, 근래
내    용

  4개의 구역에서 고려시대 초기에서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는 건물지, 주거지, 공방지, 수혈, 삼가마, 암거, 구, 우물, 회곽묘, 토광묘, 옹관묘 등 47기의 유구와 주혈 208공이 확인되어 동시기 칠곡지역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하였다.

이와 더불어 인접하여 조사된 동일 성격의 칠곡영남권화물터미널및컨테이너기지조성부지내유적(제28집 칠곡 연화리 유적Ⅰ,Ⅱ,Ⅲ,Ⅳ)에서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출토되어 향후 두 유적의 조사성과를 결부한다면 통일신라시대 이후 칠곡지역, 특히 연화리 일대의 마을형성과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금번 조사유적에서는 북쪽으로 9km 떨어진 칠곡 봉계리 가마의 생산품인 청자가 다량 출토되어 칠곡지역 일대의 청자생산과 유통관계를 살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제Ⅰ구역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초석을 사용한 기와집들로 주건물을 중앙에 두고 사방으로 부속건물을 배치한 것으로 보아 일반가옥과 다른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조성하였을 것으로보인다. 조성시기는 13세기초반 이전으로 보이며 배산임수의 입지를 하고 건물의 주향이 동서남북의 정방향으로 놓여진 점으로 미루어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지은 건물로 보인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주변에서 출토된 묘지석과 지명유래로 보면 조선후기 이래로 ‘大書堂谷=큰서당골’로 불리고 있고, 동일 계곡의 하단부로 인접하여 조선시대 초기 서당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건물지가 조성되어 있어 서당과 같은 성격의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제Ⅳ구역에서 조사된 회곽묘는 축조방법이 특징적이며 전면에서 묘지석이 확인되어 야성송씨가문의 宋啓龍과 부인 李享東의 합장묘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묘지석에는 지천면의 역사, 이곳의 지명, 야성송씨의 가계도 등을 보완할 수 있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제작시기는 묘지석에 기록된 당시 지명과 칠곡군 지천면의 행정지명 변천과정의 비교를 통해 조선후기에는 이곳이 칠곡군 도촌면 ‘大書堂谷’에 해당하고 묘지석은 1895년 겨울에 제작되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제작자는 묘주의 손자인 송지정으로 조부 송계룡이 76세가 되던 해인 1840년(庚子年)에 사망하고, 이후 1850년에 조모인 이향동이 사망하자 이곳으로 조부모를 이장하여 합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외 고려~조선시대의 주거지, 공방지, 수혈, 삼가마, 암거, 구, 우물, 회곽묘, 토광묘, 옹관묘 등의 유구들은 동시기 연화리 일대에 조성되었던 마을의 모습과 이곳에 살던 주민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