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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평리동 1337-1유적(大邱 坪里洞 1337-1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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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대구 서구 평리동 주공아파트 재건축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8-154호
유적위치대구 서구 평리동 주공아파트 재건축부지내 유적 발굴유형시굴
조사기간2008.03.17. ~ 2008.04.25.
조사면적78,256㎡
유적종류분묘, 수혈 유    형토광묘, 목관묘, 수혈, 구
시    대조선~근래
내    용

  시굴조사 결과, 3개 구역 가운데 제1구역의 트렌치 2개소에서 유구가 확인되어 주변을 확장하여 그 범위를 확인하였는데 더 이상 주변으로 유구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시굴조사 기간내에 유구조사를 마무리하였다. 유구가 확인된 곳은 제2트렌치와 제6트렌치로 옛지형으로 볼 때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확장 조사된 제2트렌치와 제6트렌치에서는 조선시대 이후로 추정되는 토광묘 1기, 목관묘1기, 수혈 1기, 구 2기 등 총 5기가 확인되었다. 

  한편 시굴당시에는 이미 과거 아파트 공사로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제2구역과 제3구역의 연결부분에 일부 걸친 상태의 大邱府 社稷壇이 존재했음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각종문헌기록과 현장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대구부 사직단은 기존 신평리주공아파트의 남서쪽 모서리를 일부 포함하여 도로와 단독주택이 들어서 있는 평리동 1341-10·17·19번지를 중심으로 존재했으며, 사직단지의 형태는 방형으로 내부에 사단과 직단 및 재실과 신실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조선초기에 건립된 후 승려에 의해 관리되고 지속적으로 제례가 있어 왔으며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어버리기 위해 그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꾸미거나 없애버리는 과정에서 그 명맥을 다한 것으로 판단된다. 용도 폐기된 후 사직단터는 1970년대 초까지 남아있었으며 1975년 이후 진행된 도시화과정에서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