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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교촌리 1유적(尙州 校村里 1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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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상주 명주테마파크 조성사업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8-811호
유적위치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교촌리 1번지 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발굴
조사기간2008.12.03. ~ 2009.10.30.
조사면적시굴: 32,284㎡, 정밀: 54,000㎡
유적종류생활, 생산, 분묘 유    형건물지, 주거지, 와요, 토광묘, 회곽묘, 도로유구, 고상식건물지, 수혈, 매납유구, 적심, 구, 주혈
시    대제Ⅰ구역: 고려~조선, 제Ⅱ구역: 조선
내    용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지, 주거지, 기와가마, 토광묘, 회곽묘, 도로유구, 고상식건물지, 수혈, 매납유구 등에서 445점의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고려시대의 것도 확인되지만, 대부분 17세기 이후로 편년되는 조선시대의 건물지, 주거지, 기와가마, 무덤이 중심을 이루는 유적이다.

건물지의 경우 유구의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건물의 규모나 구조 등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으며, 출토된 대체적인 유물상을 통해 13세기(제2호)와 17세기 이후(제1·3호)로 편년하였다. 주거지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분청자와 백자류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규모나 내부시설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며, 무덤군과 동일한 능선에 입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侍墓와 관련하여 조성된 묘막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주거지에서 출토된 분청자가 토광묘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청자를 공반하는 주거지는 유적에서 토광묘가 집중적으로 조영되는 시기보다 앞서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조선시대 묘인 회곽묘와 토광묘는 동일한 입지상에 조성되어 있었는데, 회곽묘의 경우 합장묘와 단독묘로 구분되며, 토광묘는 벽감의 유무와 목관의 유무 등으로 구분하였다. 무덤의 조영시기는 회곽묘는 축조방식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로 파악하였고, 토광묘는 유물의 제속성을 통해 17세기 이후로 편년하였는데, 회곽묘와 토광묘 간의 중복조성이 없는 점과 두 묘형이 당시의 사회적 신분을 반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대체적으로 동시기에 조영되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기와가마는 반지하식의 등요로 아궁이와 연소실 일부는 지하식으로 조성한 형태이다. 소성실과 연소실의 잔존상태로 보아 가마는 조업이 완료된 이후 어느 시점에 자연적으로 폐기되었으며, 회구부의 범위나 퇴적양상으로 보아 단기간에 사용되었던 가마로 파악하였다. 가마의 조업시기는 소성실의 바닥에 사용된 기와의 문양을 근거로 17세기 이후로 편년하였다.

이상과 같이 상주 교촌리 1유적은 고려시대의 일부 유구를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생활·생산·분묘유구가 모두 확인되는 복합유적이며, 17세기대에 본격적으로 유적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분청자를 공반하는 일부 주거지는 유물의 속성상 15세기대로 편년되는데, 15세기는 이 마을에 향교(함창향교;1417년에 현위치로 이건)가 조성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유적과 인접한 함창향교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교촌리 일대는 이 시기부터 일정규모의 마을이 존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금번에 조사된 다종다양한 유구와 유물은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