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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성산 사부동 도요지(高靈 星山 沙鳧洞 陶窯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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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고령 "성산사부동 도요지"축대보수공사 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10-113호
유적위치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 70번지 일원 발굴유형정밀
조사기간2010.05.19. ~ 2010.06.03.
조사면적200㎡
유적종류생산 유    형요, 폐기장, 구
시    대조선이전, 조선
내    용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高靈 沙鳧洞과 箕山洞 窯址, 사적 제510호) 내 여러 지점의 가마터 중 경북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 70번지 일원에 위치하는 가마터에 대한 것이다. 고령군에서 사적지에 대한 보호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민가 및 경작지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기존의 축대범위를 제거하고, 가마관련 유구의 확인 및 정비사업 시 유구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적지 내 기존의 축대가 설치되어 있는 범위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결과 부분적이지만 분청자 가마 1기와 주변에서 회구부를 포함한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하는 폐기장을 확인하였고, 그 밖에 폐기장 하부의 자연구 1기도 확인하였다. 그리고 조사과정에서 분청자류와 요도구 등 다종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분청자 발과 접시류가 주종을 이루었다. 문양은 연당초문과 초화문 등이 흑상감으로 시문되었고, 주종을 이루는 인화기법에는 국화문, 나비문, 학문 및 육원문, 삼원문, 승렴문, 여의두문 등이 시문되었다. 출토유물 중 명문은 주로 접시류의 내저면 바닥에서 확인되는데, ‘司’, ‘膳’, ‘大’, ‘十’ 등이 있으며, ‘司’·‘膳’銘분청자는 司膳署를 지칭하는 관사명으로 추정하였다. 이 司膳署의 존속기간과 호림박물관 소장 粉靑象嵌蓮唐草文恭安銘鉢(1400~1420)과 유적에서 출토된 유사한 문양을 가진 분청자발과의 비교를 통해 볼 때 중심시기는 대체로 1420년을 전후한 시기로 파악하였다. 다만, 이번 보고한 유물들은 조사대상지 내 유구확인과정에서 출토된 것인 만큼 성산 사부동 도요지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음을 밝혀둔다.

  조사대상지를 포함한 성산 사부동 도요지는『世宗實錄地理志』고령현조에 나오는 상품자기를 생산하던 曳峴里磁器所로 비정되고, 이번 조사와 기존 지표상에서도 상급의 분청자, 백자, 갑발, 도침, 태토빚음받침 등이 확인되어 이러한 가능성을 높혀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325개소의 磁器所와 陶器所 중 上品을 생산하였던 4개소 중에서 고령이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본 유적을 포함한 이 일대가 그러한 곳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표지의 보고서 유적명은 발굴조사 당시 조사대상지가 사적 제71호‘성산 사부동 도요지’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후 문화재청에서는 2011년 7월 28일에 사적 제71호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사적 제72호‘ 성산 기산동 도요지’를 통합하여, 사적 제510호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로 재지정하였다. 보고서 본문에는 발굴당시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도면과 도판의 유적표시에는 새로 지정된 사적 제510호의 명칭을 기입하였다.

•사적지 축대정비 작업과정에서 유구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아울러 유구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유구내부에서 수습한 유물은 없었으며 수습한 유물은 유구확인과정에서 수습한 상부수습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