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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산합리유적(醴泉 山合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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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경북도청이전신도시 1단계건설사업(4구역) 부지내 유적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12-301호
유적위치산합리유물산포지Ⅰ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산합리 산72-1번지일원 산합리유물산포지Ⅱ : 산합리 223-1번지일원 산합리고묘군Ⅷ : 산합리 512번지일원 발굴유형시굴, 정밀
조사기간2012.06.26. ~ 2013.06.19.
조사면적산합리유물산포지Ⅰ: 시굴) 52,128㎡, 정밀) 7,510㎡ 산합리유물산포지Ⅱ: 정밀)2,900㎡ 산합리고묘군Ⅷ : 시굴)1,600㎡, 정밀) 750㎡
유적종류생활, 생산, 분묘 유    형주거지, 토기요지, 작업장, 구, 묘, 수혈, 노지, 매납유구, 적심
시    대신라, 고려, 조선, 시대미상
내    용

  예천 산합리유적은 경북도청이전신도시 1단계 건설사업(4구역)에 앞서 해당 부지에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유적은 산합리유물산포지Ⅰ·Ⅱ, 산합리고묘군Ⅷ의 3개 구역으로 이 일대의 나지막한 구릉상에 서로 떨어져 위치한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시대 주거지, 토기요지, 작업장(공방지), 구와 같은 생활·생산유구, 고려시대 수혈, 노지, 구, 주혈, 묘와 같은 생활·분묘유구, 조선시대 수혈, 묘, 매납유구, 시대미상 수혈, 구, 노지, 적심, 주혈, 묘 등 모두 199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신라시대 토기요는 반지하식 구조로 연도부 상부는 일부 삭평된 상태였지만 소성실, 연소실 등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내부에서 출토된 인화문토기편 등의 토기류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결과, 고고지자기 측정결과 등의 자료를 비교검토하여 조업시기를 7세기(중·후반)로 추정하였다. 한편, 토기요는 소위 수직연소식 구조인 점에서 영남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신자료이다.

신라시대 주거지는 산합리유물산포지Ⅰ과 산합리고묘군Ⅷ이 분포하는 구릉의 사면 하단부에서 확인되었다. 상부가 대부분 삭평되어 확실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내부에서 부뚜막시설과 노지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동시기 인접한 지점 및 주변지역에서 확인되는 주거지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과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등의 결과로 보아 주거지의 조성시기는 토기요와 같은 시기로 판단하였다.

고려~조선시대 묘는 산합리유물산포지Ⅰ과 산합리고묘군Ⅷ에서 다수 확인되었으며, 조성시기는 출토된 청자와 백자류를 통해 12~13세기, 15~18세기로 판단하였다. 특히 산합리유물산포지Ⅰ의 경우 북쪽으로 원형보존지역이 위치하는데, 여기에도 동시기의 분묘들이 유존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 외 산합리유물산포지Ⅱ에서는 고려~조선시대 수혈, 노지, 구, 적심 등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유구의 유존상태가 양호하지 않고 출토유물이 소량이어서 구체적인 성격을 구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당시 취락내 또는 그 주변에 있었던 생활터전의 일부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