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高靈 池山洞 大加耶古墳群)Ⅰ
본문
유 적 명 |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정비부지 내 유적 | 문화재청 허가번호 | 제2017-0639호 |
유적위치 |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23-1번지 | 발굴유형 | 제2017-0639호 |
조사기간 | 2017.06.21. ~ 2018.01.19. | ||
조사면적 | 1,412㎡ | ||
유적종류 | 분묘․기타 | 유 형 | 대가야시대 석곽(실)묘 66(74)기,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기, 조선시대 노지 1기, 주거지 1기, 시대미상 수혈 2기, 생활유구 1기, 토광묘 3기 |
시 대 | 대가야~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 | ||
내 용 | 시굴조사 : 2017. 6. 21.~ 2017. 8. 28. 정밀발굴조사 : 2017.10.17.~ 2018.01.19. 본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사적(구번호 제79호)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 일대에 친환경적 탐방로를 개설하고, 고분군의 훼손방지를 위한 CCTV 설치공사에 앞서 사전조사로 진행되었다. 조사결과, 대가야시대 석곽·석실묘 66(74)기,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기 등 총 78(86)기의 유구와 토도류, 금속류 등 총 821건 1,457점이 출토되었다. 대가야시대 석곽·석실묘에 대한 조사성과를 요약하면 첫째, 지산동 고분군은 중앙부에 위치한 덕곡재를 경계로 크게 북군(A구역)과 남군(B구역)으로 구분되는데, 북군은 5세기대 고분이 대부분으로 할석조 석곽이 주류를 이루고, 남군은 6세기 이후 고분들로 판석조 석곽이 주류를 이루는 양상을 보였다. 둘째, 묘제는 크게 수혈식 석곽묘와 횡구식 석실묘로 대별된다. 석곽묘는 분묘 74기 중 69기이며, 고분군의 주묘제로서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후엽까지 전역에 걸쳐 고루 조성되었음이 재확인되었다. 횡구식 석실은 빈도는 극히 낮으나 입지에 상관없이 전역에 걸쳐 드문드문 분포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횡혈식 석실분의 분포에서도 동일한 양상이 확인된다. 셋째,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소형분에서의 순장을 논의할 수 있는 자료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번에 조사된 A구역의 제4·17·30·31호묘와 B구역의 제26호묘 등 5기의 소형분은 주곽 1기에 순장곽 1~4기가 세트를 이루는 구조로 확인되었다. 소형분의 순장은 대·중형분 보다 약간 늦은 5세기 중엽 경부터 나타나며, 5세기 후엽~말경에는 순장곽의 수가 정점에 이르고, 6세기 전엽 이후에는 서서히 사라지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넷째, 이번에 조사된 석실들을 통해늦어도 6세기 1/4분기 이전에는 횡구·횡혈식 석실이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대가야의 발달된 철기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A-27호묘에서 충각부투구가, A-19호묘와 B-3호묘에서는 종장판투구가 각각 출토되었다. 이 중 충각부투구는 동일 형식이 일본열도에서 많이 출토되어 왜와의 문물교류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B-3호묘에서 철제안교의 전륜과 후륜이 43~46cm 간격을 두고 안정된 상태로 출토되었고, A-19호묘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사행상철기가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대도, 도자, 철모, 철촉 등의 무기류와 재갈, 등자, 행엽, 철탁 등의 마구류가 다수 출토되어 철제무기로 완전무장한 대가야의 기마무사를 복원하는데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여섯째, 출토유물을 통해 추가장의 여부와 주변국과 이루어진 문물교류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A-2호묘에는 1차 매장 당시 6세기 초~전엽 이후로 편년되는 대가야 시기의 금동제관모, 금동제삼엽문환두부, 금동령, 소찰, 철탁이 부장되었는데, 이 중 금동제관모는 백제관모와 형태적으로 연결되고, 금동제삼엽문환두부는 신라에서 제작한 물품이다. 이후 2차로 추가장을 하면서 기존 유물을 한쪽으로 치우고, 6세기 말~7세기 초로 편년되는 신라후기양식의 유개고배와 대부장경호 등을 부장하였다. 그리고 동장벽 상부에서는 7세기 말~8세기 초로 편년되는 당식 청동대금구 세트가 출토되었다. 이상과 같이 이번 발굴조사는 좁고 긴 탐방로라는 한정된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고분군의 최정상부에서 주요 가지능선 및 말단부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됨으로써 대체적인 고분의 축조추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더불어 입지와 축조재료에 따른 묘제의 구조, 소형분의 순장양상, 횡구·횡혈식 석실의 도입시기 등이 새롭게 확인되고, 다양한 출토유물을 통하여 대가야의 발달된 금속제작기술과 주변국인 백제, 신라, 왜와의 문물교류도 알 수 있었다. 반면, 이번 조사는 석곽 및 석실묘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며 보안시설을 설치하고자 기획한 바, 별도의 해체조사를 진행하지 못하여 묘광 양상과 벽체 뒷채움 등 구조 전반에 대한 내용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아쉬움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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