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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옥곡동 138유적(慶山 玉谷洞 138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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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적 명경산 옥곡 도시개발사업지구내 유적(Ⅱ구역) 문화재청 허가번호제2005-864호
유적위치경상북도 경산시 옥곡동 138번지 일원 발굴유형정밀발굴
조사기간2006.07.03 ~ 2007.01.31.
조사면적25,810
유적종류생산, 건물, 생활 유    형목탄요, 건물지, 우물, 수혈, 구, 배수로
시    대삼국, 통일신라~조선
내    용

유적이 위치한 경산시는 경상북도의 남부중앙으로 낙동강의 한 지류인 금호강의 중류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대구광역시, 동남쪽으로 청도군, 동북쪽으로 영천시와 접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관계로 고대로부터 동래, 울산, 경주, 포항 등 한반도 동남부에서 대구로 진입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청동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들이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목탄요 2기,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동, 통일신라~조선시대 우물 12기, 수혈 26기, 구 14기, 배수로 4기, 주혈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토·도류 31점, 와·전류 540점, 자기류 50점, 기타 23점 등 총 644점이다. 

목탄요는 연소부, 소성부, 측구, 연도부, 측면 작업장 등 구조가 잘 남아 있는 상태로 그 축조연대는 통일신라시대 건물지와 중복관계, 출토유물, 그리고 고고지자기 측정결과로 보아 제1호의 경우 A.D.390±20년, 제2호의 경우 A.D.370±20년으로 4세기대에 백탄을 생산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건물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상부의 조선시대 유구는 경작에 의한 교란 및 파괴가 심해 그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통일신라시대 건물지는 그 규모나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관청에 해당하는 격을 가지는 것으로 인화문토기(마제형종장연속문, 점열문)와 기와(중판의 선조문기와, 연화문 막새, 보상화문 막새, 용면와) 등 으로 보아 8세기경에 초창되어 10세기경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최하단에 목재를 결구하여 통형으로 석축을 하다가 조선시대가 되면 주로 최하단에 대형할석을 이용하여 상광하협으로 석축을 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수혈은 그 용도가 함정, 폐기장, 저장용, 단야로·용해로, 토취장으로추정된다.